2009/06/28 22:41

오카마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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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마의 이별엔 작별인사 따윈 필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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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길 말은 있나!

本望
만족한다
je ne regrette rien
I have no regrets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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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4 15:22

진보신당 20대 당원 기초교육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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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12:57

근대성에 대하여

내 모든 레폿이 그렇듯이 마감시간이 급박하여 발 결론....



근대성에 대하여

 


근대성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덧없는 것,

우연한 것으로서 예술의 절반을 이룬다. 예

술의 나머지 절반은 영원함과 불변함이다.  

- 보들레르 ‘근대적 삶의 화가’               


0. 근대성이란 무엇인가?


  근대성이란 ‘우리 시대의 자명성’을 ‘그렇지 않은 지나가버린 과거’로부터 시대적으로 구분하는 개념이다. ‘연대기적으로 보아 역사적 이해의 중재 없이는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그러한 과거’로부터 ‘우리가 친숙해 있는 역사적 세계’에 대한 인식을 나누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좀 더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중세의 봉건제 시스템과 다른 사회적 삶의 독특한 형태로서의 근대사회의 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좁게는 근대의 삶과 사회를 지배해왔던 주체-대상을 기본으로 하는 인식론을 뜻하고, 넓게는 그것이 낳았던 전반적인 문화현상과 경험지반을 뜻한다. 근대사회는 16세기 르네상스, 종교개혁으로 부터 태동하여, 18세기 계몽주의, 시민혁명을 거쳐 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완성된 서구의 특정한 사회 형태이다. 그것은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보급되어 보편적인 사회 형태 혹은 마땅히 따라야 할 전법으로 자리잡았다.


모더니즘은 사회과학, 문예, 철학적 관점으로 나누어 정리된다. 사회과학에서의 모더니즘은 막스 베버가 말하는 ‘서구적 합리주의’를 토대로 한다. 서구적 합리주의는 목적합리적 합리주의로 유럽 사회 밖에서는 성취되지 못했고, 오로지 유럽 세계에서만 성공했다. 이는 종교적 주술의 지배력으로 부터 해방(탈주술화)되어 세속적 문화가 독립할 때 시작되었다. 종교로 부터 해방된 세속적 문화는 과학과 예술의 자율성, 도덕과 법의 이론적 확립을 주 내용으로 한다. 문화적 영역은 이론적 자율성을 획득하고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와 국가 중심적 행정제도가 모더니즘을 특징짓는다. 문예에서의 모더니즘은 보들레르의 낭만주의에 대한 반대에서 정식화된다. 낭만주의의 핵심에 해당하는 루소적 자연관은 자연은 선하고 순수하다는 것이 었는데, 보들레르는 자연을 이미 타락되고 악으로 더럽혀진 것으로 파악한다. 보들레르는 유행의 물결로 흔들리는 도시에서의 우울과 혼란 권태라는 도시적 감수성을 기본 정조로 한다. 이로서 자연미에 대항하는 기계적 인공미가 정립된다. 철학적 관점에서의 모더니즘은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수학이 자연과학의 언어로 확림됨으로써 귀결되는 사물 이해의 변화 과정을 뜻한다. 비계량적인 질적 성질은 주관적 가상으로 치부지고, 사물의 수학적 성질만이 사물의 객관적 실재의 구성요소로 이해된다. 인간의 사유가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서 의식하고 세계해석의 중심 원리를 점유할 때 역사는 근본적으로 변형된다.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겠으나 거칠게 압축하면 근대성은 1. 이성에 기반하여 인간 주체가 자기 바깥 세계를 합리적으로 파악하여 역사를 진보, 발전시킨다. 2. 이성에 기반한 역사의 진보는 인간의 자유를 증대시킨다는 특성을 가진다.


  오늘날 근대사회는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진보를 성취했다. 멜서스의 저주와 달리 식량은 인구의 증가속도보다 더 많이 증가했으며, 과학적인 건강관리로 인간들의 평균수명은 크게 늘었고, 삶은 편리해졌다. 근대 이후 추진되어 온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기반한 산업화가 우리에게 이러한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찬란한 이성의 빛은 또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식량이 남아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지만, 경제적 논리로 인해 지구 남반구에서는 오늘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합리적 이성의 사용으로 평화를 이룩할 줄 알았던 인류는 오늘날에도 지구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것도 과학의 발전으로 이룩한 기술력의 산물인 가공할만한 대량살상무기로. 자연은 파괴되어 인간 삶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협하고 있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들은 퇴색되고, 소비만이 우리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무한한 성장과 평화, 궁극적인 이성의 승리를 믿어왔던 근대적 계몽주의는 곳곳에서 균열을 드러낸다. 진보의 개념은 의문에 부쳐졌으며, 인간은 자유보다는 예속을 경험하고 있다.


이성과 근대의 이름으로 우리는 천국을 일구어 왔지만 그와 동시에 지옥도 산출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성의 이름으로 펼쳐지고 있는 참상들에서 눈을 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성취를 무화시키고 다시 전근대의 목가생활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오늘날에는 귀농운동을 비롯해서, 각종의 소규모공동체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자급자족하는 소규모 공동체들의 네트워크만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사회적인 차원에서 무슨 수로 가능할 것인가? 아니 그 전에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치면, 우리는 거기서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가정들은 항상 우리의 파라다이스를 가로막는 무언가만 없었다면(이 경우에는 근대성) 우리는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전형적인 근대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특정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한 뒤, 그에 방해되는 것들을 말끔히 제거하는 논리. 비판하는 대상과 똑같은 논리를 갖고 단순히 시간만 거꾸로 돌리고자 하는 행위는 변혁이 아니라 ‘시대착오’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하지만 똑같은 논리의 비판을 하지 않으려면, 일단 비판의 대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희망을 말하려면 절망의 끝까지 내려가 봐야 하고, 자유를 말하려면 필연의 심연에 도달해야 한다. 근대성을 비판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말하려면 먼저 근대성의 기원인 지하실 속으로 내려가 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곳에는 모더니즘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열어놓은 모더니즘 이상의 것, 모더니즘 해체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1. 근대 개념의 기원


근대어 근대(modern)의 원형이 되는 라틴어 형용사형 modernus는 5세기의 마지막 10년경에 최초로 사용되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이후 역사가들이 ‘이교적 로마’라 부르게 될 고대 로마로부터 ‘기독교적 로마’로의 전환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즉 이 단어는 그 최초의 용법에서 ‘고대 로마에서 새로운 기독교 세계로의 이행’을 의미했다. modernus는 modo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라틴어 modo는 ‘오로지’, ‘바로’, ‘첫 번의’, ‘똑 같은’, ‘즉시’ 및 ‘지금’의 뜻을 갖는 단어로, 이에서 ‘가까운’, ‘최근의’라는 의미를 갖는 modernus라는 형용사가 파생되었다. modernus는 단순히 ‘새로운’이 아니라 ‘당시의’라는 뜻도 가지고 있었고,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단어의 ‘현재라는 역사적 시점’을 포괄적으로 의미하게 되었다.


5세기 초 오로시우스(Orosius)는 자신의 시대를 ‘기독교의 시대’로 파악한다. 그는 ‘이교도적인 과거의 불화의 시대’를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하의 ‘참다운 기독교 시대’와 명확히 대립하여 이해하고 있다. 또한 겔라시우스(Gelasius)는 저술한 494-495년의 “주교회의초록” 안에서 그는 ‘최근’ 로마 종교 회의의 훈령들을 ‘고대의’ 규칙들과 구분한다.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대에서는 보에티우스가 철학과 문학의 영역에서 이교적 희랍 라틴의 antiqui와 기독교적 moderni를 명확히 구분한다. 그에게 있어 고대는 접근할 수 없는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적절한 교육에 의해서 도달 가능한’ 과거로서 파악된다. 15세기의 휴머니즘적 르네상스가 되면, 이제 moderni는 자신의 모범이 되는 과거를 자신들의 보다 가까운 과거가 아닌 antiqui, 즉 고대의 희랍과 로마에서 찾게 된다. 말 그대로 고대가 re다시naissance태어나는 것이다. 중세의 암흑시대를 거쳐 다시 살아나는 고대의 지혜는 타버린 잿더미에서 다시금 솟아오르는 불사조로 표상됐다. 이런 의미에서 이탈리아 14세기의 계관시인 페트라르카(Petrarch)는 역사를 셋으로 나누어 이교적 로마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그 첫 기점으로, 자신들의 새로운 세기를 두 번째 기점으로 하여, 이 두 기점 사이에 놓여있는 보다 가까운 과거, 즉 ‘중세’를 암흑시대라 지칭한다.


이 시기 고대 그리스는 중세의 암흑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대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 설정되었고, 서구인들은 끊임없이 상실 된 낙원에 대한 노스탤지아를 느꼈다. 하지만 17세기 말 이른바 ‘신구논쟁’ 으로 현재에 대한 고대의 우위가 뒤집히고, 현재에 대한 적극적인 긍정이 나타나게 되었다. 논쟁에서 승리한 것은 물론 근대파였고, 그들의 논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은 난쟁이’라는 비유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근대인은 고대인들이 쌓아놓은 누적적인 지식 위에서 새로운 것들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모던은 확실히 누적적인 진보를 향해가는 역사적인 관점을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들은 자신의 시대를 원숙에 다다른 노년기로 파악해, 스스로가 피력한 발전하는 세계상과는 모순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는 계몽주의가 발흥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모던’이라는 개념이 이때에 완성된다. 18세기 지식인 들은 자신의 시대를 ‘계몽된 시대’, 인간의 시대), 철학적 세기로 규정했다. 1715년 생 피에르 신부는 ‘현재 분석’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현재의 시점을 의식적으로 미래라는 역사의 광장에 놓고 보기 시작한 최초의 일로서, 이제 현재는 ‘완성된 과거라는 이상적 영상’이 아닌 ‘점진적으로 발전해가는 미래적인 것의 완성’이라는 새로운 시각 아래 조명된다. 이제 신의 그늘을 벗어나서 이성의 빛으로 어둠을 비추어 미래로 빛을 확대해나가는 본격적인 계몽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계몽주의는 대체로 ① 지식은 전체적이고 누적적이며 특성상 진보적이다. ② 대상세계에 관한 합리적 지식을 얻을 수 있다. ③ 이러한 지식은 보편적이며 따라서 객관적이다. ④ 합리적 지식은 이데올로기, 종교, 상식, 미신과 편견 같은 왜곡된 사유형식과 다르고 우월하다. ⑤ 합리적 지식이 정당성을 인정받게 되면 그를 통해 인류의 정신적 해방과 사회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라는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정신이 집약된 것이 바로 프랑스의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이 함께 만든 ‘백과전서’이다. 백과전서에서 모던은 이제 단순히 앞선 세대와의 비교 뿐만 아니라 고딕건축과 같은 나쁜 취향, 몰취미에 대립되는 좋은 취향으로 보편적, 공시적인 의미도 획득한다.


2. 근대성의 탄생


근대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종합하여 제시한 사람은 헤겔이다. 하지만 헤겔은 모더니즘의 탄생 지점을 데카르트로 설정한다. 데카르트는 명식적으로 모더니티를 말하지 않지만, 모더니티의 근본원리인 주체-대상 인식론이 데카르트로 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에 모든 것은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 되었다. 예술의 가치는 신의 세계의 것과 얼마나 닮았는 지에 의해서 매겨졌고, 우리가 무엇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전지한 신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자아의 주체성을 철학의 첫 번째 원리로 설정한다. 데카르트에 있어서 세계는 직접적 경험에 주어진 세계와 이성이 재구성한 이론적 세계로 구분된다. 전자는 명백한 거짓이요 믿을 수 없는 것이고 오로지 후자만이 진실된 것이다. 성찰의 주체는 보이는 그대로를 실재라고 인식하는 자연적 충동에 반하여 사물의 실제 모습을 이론적으로 재구성해낸다. 이를 내면적 반성이라 하는데, 오직 이러한 내면적 반성을 통해서만 학문적 진리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이때의 오성은 철저히 수학적인 것으로 이제 대상 세계는 철저히 양적으로 파악가능하고, 개조가능하다. 데카르트는 자연과학을 정초한 것이다. 모더니즘을 새로움과 독창성에 대한 숭배라고 할 때, 데카르트에게서 새로움과 독창적인 것은 근거에로의 회귀를, 심층적 기원에로의 복귀를 말한다. 한편으로 데카르트의 성찰에는 유한자와 무한자의 차이가 존재한다. 유한자는 과학적 오성이고, 무한자란 신이다. 무한한 신은 결코 유한한 오성에 의해서 표상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모더니즘 담론은 이론적 표상에 대한 한계 또한 자신 안에 내포하고 있다. 이제 두 가지의 초월이 존재한다. 감성을 재구성하거나 교정할 수 있는 오성이 있고, 그 위에 다시 오성의 정당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초월적인 것(여기서는 신)이 있다. 모더니즘의 담론은 과학적 표상의 가능조건을 명시하는 동시에 또한 그 한계도 사유하고 이로써 과학적 표상에 대한 비판과 수정가능성을 스스로 조성하고 있다. 모더니즘의 합리주의와 진보 이념은 이런 이성 내재적 자기비판과 자기 교정 가능성을 매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중세적 질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철학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데카르트의 인식은 분명히 주체로부터 시작되지만, 그것의 확실성은 여전히 전지전능한 신에 의해서 보장되기 때문이다. 신이 없다면 인식도 없다. 진정한 근대는 칸트로 부터 시작된다. 칸트에 이르러서 이제 신은 완전히 인식의 영역에서 추방된다. (건방지게도 칸트는 도덕철학 구축을 위해 신을 ‘요청’한다.) 칸트에게서 인식은 순전히 주체 내부에 있는 ‘인식의 선험적 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칸트는 스스로 이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명명한다. 과거에는 대상이 주체 주위를 돌며 그 객관적 성질에 의해 인식되었지만, 이제 주체가 대상 주위를 돌며 주체의 인식능력에 따라 대상을 찍어낸다. 대상세계는 존재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인식능력으로 알 수 없는 초월적인 것, 미지의 X이다. 오직 우리의 감성에 들어와서 오성의 범주에 의해 파악된 것만이 인간에게 있어 유효하다. 고전적 철학의 명제인 ‘존재와 사유의 일치’가 칸트에 이르러서 결정적으로 붕괴된다. 칸트의 이러한 새로운 주체는 기존의 상식과 결별하여 스스로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 기념비적인 저작『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칸트는 “계몽이란 자기 원인적 미성년 상태 밖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미성년 상태란 타인의 지도 없이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다.”라고 적고 있다. 계몽은 곧 자아의 고유한 판단을 대리하던 타인으로부터의 해방에의 의지이다.


 칸트에 이르러서 이성의 반성능력 또한 정식화 된다. 칸트는 이성을 최고법정으로서 설정하는데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 각자는 도대체 무엇이 타당성 주장을 가능케 하는가를 이 법정 앞에서 정당화해야 한다. 이를 이성이 이성을 비판한다는 뜻에서 자기지시성이라고 한다. 순수이성비판은 인식토대의 분석을 통해 현상들에 맞추어져 있는 우리 인식능력의 오용을 비판하는 과제를 떠맡는다. 칸트에 이르러서 자율적인 영역의 분화도 뚜렷하게 감지된다. 과거의 한 몸뚱이였던 진리, 도덕, 아름다움 세 영역은 각자 자율적인 영역으로 분리된다. 각 영역은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한받지 않고 각자 그 내적 판단기준을 갖는다. 이렇게 주체성, 자기지시성, 자율성, 새로운 것의 추구라는 근대성의 기본원리는 모두 칸트에 의해서 정식화된다. 


데카르트가 근대의 문을 열고, 칸트가 근대의 원리의 기초를 닦았다면, 헤겔은 ‘역사성’을 도입해 근대라는 개념을 완성시켰다. 헤겔에게 있어 철학의 첫 번째 임무는 자신의 시대 안에서, 자신의 시대에 의해, 자신의 시대를 생각하는 것이다. 헤겔에게 우리의 시대란 새로운 시기를 향한 잉태의 시간, 이행의 시간이다. 정신은 결코 멈추어 있지 않으며 끊임없는 진보의 운동 안에 속해 있다. 근대성의 관념은 오직 역사철학, 역사적 의식의 전개에 의해서만 스스로를 드러낸다. 자신이 생성된 시대에 의해서 규정되는 철학은 어떤 일정한 역사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근대는 근대가 스스로를 하나의 역사적 시대로서 파악하고 모범적 과거로부터 분리되며 스스로 자신의 규범을 창조해야 한다. 헤겔은 새로운 시대의 원리로 주체성의 원리, 즉 자유와 반성으로 개념화한다. 이 주체성의 원리는 ① 개인주의, ② 비판의 권리, ③ 행위의 자율, ④ 관념주의 철학으로 나타난다.


이성적 계몽주의의는 종교에서 분리되며 종교를 퇴락시킨다. 이제 종교의 퇴락은 계몽주의가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지식과 신앙의 분리를 가져온다. 헤겔은 이를 ‘자기 소외된 정신의 세계’라는 이름으로 형상화한다. 교양이 더욱 강력해 질수록, 복잡한 이중화로 얽혀있는 삶의 표현이 더욱 다채롭게 발전할수록, 소외된 이중화 역시 더욱 강력해진다. 그러나 헤겔에 의하면, 시대정신이 총체성으로부터 벗어나고, 정신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상황이 바로 근대철학의 가능 조건을 구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의 주관적 관념론 비판은 그 자체로 근대성 비판이 된다. 비판은 반성 이외에 다른 어떤 수단도 사용할 수 없으며 사용해서도 안 된다. 아무런 전형도 없으며 미래에 대해 열려져 있고 혁신을 추구하는 근대는 자신의 척도를 오직 자기 자신으로부터만 창조할 수 있다. 규범성의 유일한 원천은 주체성의 원리며, 근대의 시대의식 자체 또한 이 주체성의 원리에서 유래한다. 자기의식의 근본사실로부터 출발하는 반성철학은 이 주체성의 원리를 개념화한다. 한편 자기 자신에게 적용된 반성능력을 통해 절대적으로 설정된 독립적 주체성의 부정성이 드러난다. 헤겔은 이러한 소외를 절대지라는 합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절대지 개념은 오히려 현재의 중요성을 박탈하고 현재에 대한 관심을 파괴하며 자기 비판적 혁신이라는 현재의 소명을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3. 사회학에서의 근대성


  사회학에서의 근대는 유동적이고 다원적인 사회구조, 즉 새로운 사회계급과 계급분파, 새로운 직업,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 그리고 신흥도시 중심지로의 인구집중을 뜻한다. 사회학에서의 모더니즘 역시 분화와 자율성의 원리를 뜻하는 것이다. 근대성이란 용어를 체계적으로 사용한 학자는 막스 베버다. 베버는 근대를 합리성의 증대로 파악한다. 계몽주의는 과학적 사고의 승리와 어떤 실절직인 의미의 ‘영원한 것’의 폐기라는 유산을 남겼다. 계몽주의 과학은 사회 세계의 사실성에 기반하는 실증주의의 지배를 낳았다. 실증주의는 경제적 자본주의와 행정의 관료주의, 자율적인 예술영역을 낳았다. 근대성의 구조적 토대는 단일화된 이데올로기들로 구성된 동질적인 전 근대세계가 해체되고 또 합리화되고 분화되어 서로 경쟁하는 복수의 자율적 영역들이 발전함에 따라 마련된다. 이것이 바로 합리적 목적의 선택,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의 계산, 그리고 지식과 가치에 의해 인도되는 합리적 행위에 의해 지배되는 합리성이다. 합리화된 자율적 영역들은 증가하여 인간의 합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해주지만, 영역의 자율성은 역설적으로 합리성 그 자체의 힘에 의해 위협받는다. 궁극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실질 합리성은 법, 관료제, 전문화된 지식으로 구성되는 형식합리성에 의해 위협받는다. 형식합리성은 개인들을 미리 정해진 체계의 목적에 부합하게 만들고, 개인들을 탈인격화된 지배의 익명적 단위로 변형시킨다. 인간은 스스로가 추구한 합리성에 의해서 철창에 갇힌 신세가 되는 것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 하이머는 베버의 이러한 생각들을 발전시켜 계몽의 변증법을 제시한다. 계몽은 스스로가 야만을 교정한다고 믿었지만 스스로가 야만이 되어 다시 한 번 계몽받아야 하는 위치에 서있다는 것이다. 계몽주의는 계산, 양화, 형식주의, 유용성, 효율성이라는 그것의 조직화 요소들로 인해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다. 세계는 계산가능성이라는 도식 위에 세워지고 인간들은 동원가능한 도구로서 취급된다. 이들은 비판적 이성을 사용해 목적의 정당성을 묻지않는 근대의 도구적 이성을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에 아도르노는 호르크하이머와 결별해 한층 비관적으로 변하여 ‘부정의 변증법’을 제시한다. 끊임없이 개인을 포획하는 근대성으로부터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훗날 푸코의 실존미학으로 연결된다.


맑스는 근대성을 상품생산 법칙 그리고 인간의 삶을 압도하는 화폐권력에 기반하는 객관적인 역사적 과정과 관련하여 파악한다. 맑스 역시 근대성을 해방과 지배 양면적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한다. 흔히 맑스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가로 생각하지만, 맑스만큼 자본주의를 열렬히 찬양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자본주의는 기존의 가부장적 봉건제도를 끝장내고, 생산력을 잠재적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공산주의로의 길을 닦는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유무에 따라 계급이 나누어져, 한 쪽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가로, 한 쪽은 소유라고는 몸뚱아리 밖에 없어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아야만 하는 노동력 상품의 소유자인 노동자 계급으로 분할된다. 맑스에 의하면 상품은 두가지 가치 즉,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를 지닌다.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은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를 분리하는 데에서 생겨난다. 개인과 사회를 묶어주는 사회적 유대는 교환가치 속에서 표현된다. 화폐가 사회를 묶어 줄 때 자본과 노동의 불평등한 관계는 신비화된다. 상품은 사람들간의 관계를 사물의 속성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를 물화라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인간 노동의 사회적 산물인 상품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표상된다. 상품이 생산자를 지배하고, 자본은 객관적 권력이 되어 인간의 삶을 소외시킨다. 자본주의는 개인들을 파편화 하고 원자화하고 공동체와 사회적 유대를 손상시킨다. 하지만 실제적 사회적 관계는 생산자들간에 존재하는 관계이다. 맑스에게서 이러한 관계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폐지한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때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맑스의 이러한 근대성 비판은 ‘근대적’이라는 비판에 휩싸인다.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목적(telos)를 설정하고, 역사를 이를 향해가는 과정으로 설명할 때, 다양성들은 모두 일원적 가치 속에서 폭력적으로 배제된다. 역사적 사회주의에서 있었던 많은 폭력들이 맑스 사상의 이러한 근대성들을 증거한다.


기든스는 현대 사회를 여전히 근대(modern)로서 가장 잘 묘사할 수 있고, 또 사회사상가들이 그동안 생각해 온 것과 같은 방법으로 이론화할 수 있는 그런 사회에 지속해서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든스는 급진적(radical), 고도의(high), 후기(late) 근대성(modernit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기든스는 모더니티를 자본주의, 산업주의, 행정권력, 군사력 네 가지로 설명하며 이러한 근대성들이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성찰적 근대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사회운동에 의해 탈기근의 체계, 기술의 인간적 전환, 다층화된 민주적 참여, 비무장화를 향해 가고 있다고 조심스레 낙관한다.

 

4. 하이데거의 근대성 비판


하이데거가 볼 때 철학적 모더니즘의 시대는 세계의 존재가 자아의 표상 행위에 의하여 사적으로 소유되고 참칭되는 시대이다. 이 시대에 세계는 자아가 재구성한 주관적 표상의 세계로서 존재하게 된다. 의식적 사유 속에서 표상은 모든 대상적 사물들을 수동적 표상성의 연관 체제 속에 불러낸다. 의식이란 표상성의 범위 안으로, 대상적 사물들을 표상 주체인 인간과 함께 능동적으로 표상하면서 재구성하는 행위이다. 여기서 바로 지배의 가능성이 생긴다. 독일어로 표상(Vorstellung)은 앞에vor 세운다Stellen을 의미한다. 이제 주체는 모든 대상 세계를 자신의 앞에 세워서 양적인 것으로 환원한 뒤 지배한다. 이러한 사고체계 속에서는 인간도 예외 없이 동원가능한 자원으로만 인식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존재자들이 존재하는 바탕에는 ‘존재’라는 초월적인 것이 있다고 하며 존재망각의 역사인 서양철학의 역사를 비판한다. 이러한 존재를 망각하고 존재자가 자신의 목적과 행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세계의 신이 되려고 한다면, 사라짐으로써 존재자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존재는 다시 드러남으로써 존재자들을 위태롭게 한다. 오늘날의 환경파괴와 그것이 불러오는 인간 생존의 위협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은 데카르트의 신으로 부터 온 것이며 훗날 바디우의 사건, 라깡의 실재 등의 개념으로 이어진다.


5. 포스트모던의 비판과 반비판


앞서 언급했던 인간의 파편화, 환경파괴, 전쟁 등으로 인해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모던에 대한 최초의 비판자는 니체였으나, 그는 너무 빨리 왔는지도 모른다.  모던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비판가는 료따르(Lyotard)로 그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모던을 급진적으로 공격한다. 모던에 대한 비판은 논리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 두 가지 측면에서 가해진다. 먼저 논리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료따르는 근대는 지식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특징을 가진다고 말한다. 수학이라는 보편학문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은 객관이며 공평무사한 것이다. 하지만 근대에서 과학은 언제나 인간의 진보라는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지위를 가진다. 과학이 그 자체로 순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보라는 메타서사에 봉사할 때, 지금까지 객관성을 주장해왔던 과학의 객관성의 기반은 그 근저에서부터 흔들리게 된다. 이렇게 료따르는 메타서사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며, 각자 자율적 영역을 지니는 작은 이야기, 언어게임을 주장한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정보수집과 교환하는 양식은 20세기 들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지식은 특정한 담론과 정보의 축적, 그리고 이를 둘러싼 맥락을 뜻한다. 과거에 지식은 집합적 정신 내의 특권화된 정신적 사유의 통일체를 뜻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사회는 분화되었고 지식은 각자 특수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 자신의 영역내에서만 정당화 된다. 과거 지식과 과학을 둘러싼 아우라는 파괴되었고, 복수의 지식이 포스트모던 사회의 핵심을 이룬다. 한편 료따르는 분화되고, 순간적인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영원성의 추구가 나타난다고 보며 칸트의 개념을 되살려서 ‘숭고’이론을 재정식화 한다.


미완의 근대성의 완성을 추구하는 하버마스는 료따르를 세 가지 측면에서 다시 비판한다. 먼저 그는 전근대적 사회의 후진성을 들어 근대 사회가 전근대 사회에 비해서 충분히 진보했다고 주장한다. 둘 째, 료따르의 주장이 어떠한 실천적 전망을 결여하는 것과는 반대로 모더니티는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결정함으로써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책임성과 의식적인 실천의 전망을 내놓는다. 셋 째, 근대는 과거 계몽주의와 같은 천진난만한 기대를 하지 않고도 충분히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이는 그 근거를 의사소통 행위에 의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에서 찾는다.


로스노 역시 탈근대론자들을 비판한다. 그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으며, 주의깊고 이성적인 학문적 담화를 하기보다는 독자를 놀라게 하거나 충격을 주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사회의 핵심적인 것들(합리성, 자본주의적 착취)를 보기보다는 사회의 더 주변적인 측면에 더욱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바우만이 이 논쟁에 끼어들어 다시금 근대론자들을 비판한다. 그는 모든 현대철학과 사회이론은 기실 서구의 특정한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상정하려는 과욕이라고 본다. 항구적으로 참이고 보편적이며 합리주의적인 것을 추구하는 모든 시도는 결국 자신의 사회유형이 갖는 규범을 합리화하고 우월하하려는 지속적인 욕구가 있음을 암시한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제국주의의 논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역사는 어떠한 단일한 패턴이나 지적으로 단일한 청사진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오늘날의 지식이란 다양화된 사회의 지식 간의 다리를 놓는 가교 역할을 해야한다고 본다. 한편 그는 포스트모던도 비판하는데 포스트 모던의 상대주의는 비절대적인 것을 절대주의적 용어로 진술하기에 자기모순에 빠진다는 것이며, 절망적인 다원주의를 주장해 지식이나 실천을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신중하고 망설이는 입법자의 역할을 제시한다.


6. (post)modern


포스트 모던은 “나는 어떤 목표도, 어떤 체계도, 어떤 경향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강령도, 어떤 양식도, 어떤 방향도 갖고 있지 않다. (...)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관성이 없고, 충성심도 없고, 수동적이다. 나는 무규정적인 것을, 무제약적인 것을 좋아한다. 나는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라는 1966년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말에서 잘 나타난다. 허나 과연 이러한 진술이 그렇게 새로운 것일까? 제사로 언급된 보들레르의 글을 보면 그의 모던은 오늘날의 포스트모던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스트 모던은 모던에 의하여 예기되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근대성의 비판가들은 어떤 ‘특정한 근대성’을 근대성 전체로 치환하여 그것을 비판하고 부정해왔던 것이 아닐까.


모더니즘을 넘어서면서 그것을 과거 속으로 떠밀어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의 운동은 모더니즘의 반대편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즘 자체를 형성하던 동일한 힘으로부터 발생한다. 모더니즘 밖으로 일탈하는 힘은 모더니즘 자체의 잠재력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역사를 부정하고 치유하던 힘이 언제나 역사에 있어왔던 것처럼, 모더니즘을 부정하는 힘은 모더니즘의 운동 자체 속에서 생겨난다. 근대가 만들어낸 수많은 문물과 사상들이 이제 다시 그 근대를 위협한다. 포드주의는 포스트포드주의로 바뀌었고, 책은 텍스트로, 현전은 원격통신 기술로 유령화되었다. 소위 포스트모던이라는 괴물도 모던 속에서 탄생하여서 모던을 완성하지만, 그 완성과 동시에 모던을 기존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대리보충(supplement)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자신의 기반을 망각해 온, 그래서 스스로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모던은 반드시 비판받고 수정되어야 한다. 더 이상 발전이라는 이름의 거대서사로 정당화 되는 희생(주변)은 허용될 수 없다. 하지만 한 편으로 우리는 주변만 살피다가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을 규제하는 거대한 것들의 이념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줄타기와 겸손한 자세이다. 우리는 거대서사와 주변부 사이에서 끊임없는 망설임을 겪어야 한다. 인간이란 유한한 존재는 우리 삶의 기반이 되는 무한성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언제든지 우리의 목적과 행위의 정당성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 야만 비로소 우리는 정의로울 수 있다. 그 정의의 가능성은 지금껏 우리의 곁에 있었으나 우리가 파악할 수 없었던 그 무엇, 미래로 부터 오는 절대적인 것의 가능성 둘 모두이다. 우리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것, 그리고 아직 살아있지 않은 것 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폐허의 기념비로부터 미래를 물려받기. 이것이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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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12:39

장기하, 후기 자본주의, 사회변혁

 

 

장기하, 후기 자본주의, 사회변혁

-저항의 재생산을 위하여






1. 문예선동, 그 충격과 공포


  2003년 캠퍼스의 낭만을 푸르른 가슴에 안고 OT에 갔을 때였다. 대학물 좀 먹은 선배들의 미모에 홀려있을 때 쯤 강당으로 집합 신호가 내려왔다. 강당에 내려앉아 친구들과 별 시덥잖은 얘기들을 하며, 상하좌우로 미모의 여성들을 탐색하던 중 갑자기 불이 꺼지고 어디선가 기관총 소리와 함께 탱크 소리가 들려왔다. 스크린이 켜지고, 그곳에는 어린 소녀들의 사체가 있었다. 영상은 2002년에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심미선, 신효순 양에 대한 것이었다. 스크린이 올라가고 어디선가 전통적인 의상을 입은 남, 녀 선배들이 밀려들어 매우 절도 있는 춤을 췄다. 과도하게 장엄한 제식동작들은 차마 부끄러워서 내 손으로 두 눈을 가려, 저들을 억지로 지우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곳에 앉아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당시 사회대 학생회는 한총련이 맡고 있었고, 내가 그 날 본 놀라운 광경은 소위 ‘문선’으로 불리는 문예선동이었다.


  굳이 그 날의 추억을 떠올려보는 건, 강내희의 논문을 읽기 전 부터 오랫동안 진보진영의 문화운동 전략에 대한 쇄신 방안을 고민했었는데, 바로 그 계기가 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강내희가 지적하듯 문화는 생산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내가 본 문예선동은 「남북의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사회주의식 발성법인 미성과 마찬가지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패러다임에 적합했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었다. 한총련의 사상이 철저히 이북의 것임을 감안하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민주화 전후 한국에서, 독점자본이 들어서고,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이제 막 시작되던 그 시점에서 분명 이 문예운동은 저항의 재생산의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하지만 다품종 소량생산 후기 자본주의 시대엔 더 이상 그러한 문예선동은 통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사실은 소위 NL진영이 아닌 운동권 진영에서도 NL식 문선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비NL진영에서는 문선의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비NL들의 집회현장에서는 문선을 그렇게 길게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다행이랄까. (집회에 참여해야하는 나의 고통도 크지만, 그보다는 저항에의 열망을 지닌 새로운 세대들에게 저러한 시대착오적인 문화활동을 보여줘서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의 실천 역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전의 예술이 사라지고,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개척이 요원한 ‘오늘날 저항의 재생산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에서 ‘슬프게도’ 나의 현재 고민과 저자가 ‘약 20년 전’ 던졌던 과제가 해결되지 않고 조우한다.


  먼저 저자의 글을 간단히 요약하면서 저자가 이론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알튀세르의 이론을 함께 살펴보겠다. 그런 다음 주로 부르디외의 관점에서 논문을 비판한 뒤, 마지막으로 ‘장기하 현상’을 분석해보고 새로운 문화운동을 통한 새로운 저항의 재생산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2. 김완선의 자유를 넘어,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의 너머


 우리는 김완선 그 자체를 볼 수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김완선이라는 기호체계를 이루고 있는 기호들과 그것들의 작동의 효과인 ‘김완선다움’이다. 철저히 무관심한 듯한 큰 눈, 1/4 음계 정도 이탈된 그녀의 음정, 몸놀림, 무대의 어둠과 조명이 혼합되어 마침내 김완선이 우리 앞에 드러난다. 그녀는 자유롭다. 요상스러운 몸짓과 틀어진 음계는 그녀를 삐딱하게 표상한다.

 자유로운 ‘김완선다움’은 반복될 수 있어야 한다. 고유성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반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반복되지 않는 일회적 나타남은 결코 고유하지 않다. 김완선의 반복은 김완선의 기호체계를 가동시켜 재생산하는 사회적 조건이라는 또 다른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인공위성과 텔레비전 이라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동네 꼬마들도 김완성이라는 기호를 재생산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듯 고도의 생산력은 김완선이라는 기호체계를 완성시켜준다. 하지만 김완선의 화려함은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다. 바로 생산력의 발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생산양식을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는 계급적대이다. 김완선이 끊임없이 복제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이 체계에서 허용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태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는 그 자리에 들어선다. 김완선에 대한 소비는 강제된 소비이다. 그 속에서 그녀는 통제된 일탈을 선보이며 무한정 재생산된다. 김완선은 생산관계 재생산 메커니즘, 즉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의 일부이다.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젊은 대중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김완선을 스타로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은 더 이상 송창식, 양희은, 김민기를 우상으로 삼았던 청소년들처럼 변혁의 거리로 진출하지 않는다. 오로지 허용되는 선에서만 자유, 일탈을 즐길 뿐이다.

  생산력은 김완선이라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를 낳았지만, 변증법에 의해 또 다른 단계의 계급적 적대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계급적대는 대중적으로 표출되지 않고 있다. 이는 저항세력이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와 같은 기제에 대해 무지한 것에서 기인한다. 기호체계 자체의 자율적 세계에 대한 인식과 그 체계를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이상 저항의 재생산은 불가능하다. 김완선과 같은 대중스타에 대한 과학적 인기분석에서 모순의 중층결정을 찾아내서 젊은 대중을 저항의 주체로 재생산할 때, 그들이 노동자들이 결합될 때만 사회변혁은 가능하다. 여기까지가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의 논문은 프랑스의 구조주의적 맑시스트 알튀세르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알튀세르는 맑스의 현대적 계승인 과학적 맑스주의를 추구한다. 맑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해 자본주의는 변혁될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충분히 생산력이 발달한 당대에 자본주의는 몰락하기는커녕 더욱 더 그 지배가 공고해졌다. 그의 이론은 자본주의가 그 생산과 지배의 체제를 끊임없이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능력을 문화의 층위에서 확보하고 있을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는 지배에는 강제의 동기뿐만 아니라 사상적, 도덕적 헤게모니의 확보를 통한 동의의 측면이 중요하다는 그람시의 이론을 빌려 와 문화 영역을 이론화시킨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재생산이 문화적 기제에 달려있다면 문화영역은 더 이상 계급이나 경제적 토대의 부수효과로 환원되지 않는다. 문화는 자율적 실천의 영역으로서 정치, 경제 등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동등한 하나의 심급이다. 

 알튀세르는 실재에 대한 적확한 인식인 과학적 지식과,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를 엄밀히 구분한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이데올로기란 단순한 허위의식만은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이 실제의 사회적 생산관계와 맺고 있는 관계로, 경험적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는 물질성을 지닌다.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인식되지 않고, 무의식과 같이 내재해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된다. 이데올로기는 기존의 사회경제적 생산의 조건을 재생산한다. 모든 사회관계와 사회구성체들은 특정의 지배적 생산양식의 산물이기 때문에, 특정의 지배가 관철되는 사회구성체가 지속되기 위해서 그 생산양식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성원들을 사회적 주체로 탄생시킴으로써 사회관계를 재생산한다. 프랑스 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 금기, 관계, 명령 등 의 상징체계로 이루어진 특정한 질서 속에 편입됨으로써 주체가 된다고 설명한다. 알튀세르에 있어서 그 특정한 질서는 이데올로기적 문화질서이다. 이데올로기적 문화 질서는 이미 특정의 생산양식에 기초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그물망이다. 주체는 이곳에서 주체로 호명되어서 주체로 살아가기 때문에 철저히 이데올로기적 주체가 된다.

 이렇게 사회주체를 만들어내는 물질적 기구들을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라고 부른다.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에는 가족, 교육장치, 종교장치, 법률장치, 문화장치, 정치적 장치, 노조, 매체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폭력에 의존하는 강제와 억압의 방법이 아니라 동의를 이끌어 내는 유연한 방법을 사용한다. 반대로 강제와 폭력을 동원하는 군대, 정부, 경찰, 법원은 억압적 국가장치이다. 이데올로기 장치들은 일차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동원하고, 이차적으로 억압을 동원한다. 이데올로기 장치들은 사적 영역이고, 그 수가 많고 다양하여 그 장치들 사이에 갈등과 모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배 계급이 장악하고 있는 국가권력이 이들 기구들을 동시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국가장치’가 된다. 지배계급의 지배이데올로기가 국가를 통해서 다양한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에 관철되고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사이의 모순은 조화되고 통일성이 확보된다.

 맑스의 입장에 따라 알튀세르 역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착취관계로 파악한다. 그 착취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억압적 국가장치들이 착취의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정치적 조건을 만들고,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이 그 위에서 생산관계를 재생산한다. 본 논문에서 김완선은 이러한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로 이해되고 있다. 알튀세르는 착취관계를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의 장막을 과학적 지식을 통해 걷어내어야만, 변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론 없이는 혁명적 실천도 없다”는 레닌의 언명은 알튀세르에게서 재정식화된다.

 물론 문화영역에서 이데올로기를 걷어냈다고 바로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영역에서의 변화과 다른 심급들, 특히 지배적 심급과의 관련 하에서 ‘증층결정’을 이룰 때 사회변혁은 이루어진다.

 

 알튀세르 이론을 통해서 저자의 논지를 재구성해보자면, 1) 김완선은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이다. 2) 김완선은 지배계급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자율성을 지닌다. 3)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과학적 인식을 통한 문화영역에서의 변화와 그 변화를 통한 청년층의 재생산이 필요하다. 4) 이와 경제적 심급에서의 노동투쟁이 결합될 때 중층결정이 이루어져 사회 변혁이 가능하다.


3. 부르디외 曰 “문화운동은 이렇게 하는 거야.”


  더 이상 청년층에서 운동권의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로 인해 사회변혁은 요원한 오늘날의 상황을 볼 때, 20년 전 강내희의 지적은 상당한 선견지명이 있었다. 단지 김완선이 빅뱅으로 바뀌었고, 정태춘이 완전히 잊혀졌을 뿐이다. 대체적으로 저자의 논의에 동의하지만 그의 논문에 비판지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판의 일관성을 위하여 방법론적으로 부르디외의 장 이론을 빌려와서 저자의 논문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부르디외의 장 이론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부르디외의 장 개념은 원래 문화생산의 장에 대한 분석에서 유래한 것으로, 부르디에 문화이론의 핵심을 이룬다. 장은 사회공간의 하위공간이다. 장은 사회적 분업의 증가와 전문화된 활동 영역의 출현에 따른 현대세계의 다원성과 관련되어 있으며 역사적 구체성을 부여받는다. 장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사회공간이라는 대우주 속의 소우주들로서의 장 : 문학적 장, 정치적 장, 경제적 장 등이 있다. 각각의 장은 위계적으로 조직되고, 고유한 내적 논리를 지니며, 서로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지니며 구조적 동형성을 띤다.

 둘째, 위치공간으로서의 장 : 장은 객관적인 위치들 사이의 구조화된 공간이다. 위치는 장 안에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다양한 자본의 양과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셋째, 투쟁공간으로서의 장 : 장은 다양한 위치를 점유하는 여러 행위자들 사이에서 장에 고유한 자본의 전유와 정당한 독점, 혹은 자본의 재정의를 놓고 벌어지는 투쟁의 공간이다.

 넷째, 아비투스, 전략, 궤적 : 장 안의 행위자들은 위치, 아비투스1), 궤적2)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행위자들이 서로 투쟁하면서 구사하는 전략은 이 세 가지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지배자들은 보존전략을 사용하며, 피지배자들은 전복전략을 사용한다.

 다섯 째, 위치공간, 가능성의 공간, 입장공간 : 장이 객관적인 위치공간이라면 상이한 위치들은 그에 상응하는 입장공간을 발생시킨다. 위치와 입장 간의 조응은 기계적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행위자들의 아비투스와 가능성의 공간3)에 의해 매개 된다.

 

  먼저 저자는 김완선을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로 파악하면서, 수용자들이 그저 수동적으로 김완선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수용은 단순히 문화의 내적인 내용이 수용자에게 주입되는 과정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김완선을 받아들이며 일상의 불만들을 잊어 갈테고, 누군가는 김완선을 보며 소극적 일탈을 시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김완선을 들으면서 집회에 나갈지도 모른다. 부르디외는 수용에 있어 수용자들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그는 어떠한 문화산물에나 장의 역사와 생산자에 의해 부과된 문화적 약호가 내재되어 있으며, 이러한 약호의 해독이 수용을 특징짓는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지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수용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지각, 사유, 행위의 범주에 의존한다. 논문에는 수용자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빠져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자에 대한 언급도 빠져있다. 그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로 묘사될 뿐인데, 김완선의 기획사와 작사, 작곡자, 김완선(이하 김완선의 생산자)과는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국가의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을까? 가까운 예로 90년대 Rage Against the Machine, System of a down 등 급진적인 밴드들이 미국 MTV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도 단순히 국가가 허용해서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반전 메시지를 전달했고, 불평등한 세상에 저항하자고 선동했고, 각종 집회에 참석했지만, 또한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특정한 예술작품은 예술적 장의 역사와 그에 대한 예술가 개인의 인식 및 감각, 그리고 예술적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문화는 단순히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대중의 수동적 수용이라기보다는 아비투스, 가능성의 장 등을 거쳐 훨씬 복잡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저자는 작품의 물질적 생산자는 고려했지만, 작품의 가치에 대한 신념의 생산자(미디어, 비평가)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이들은 장 내 투쟁의 도구인 상징자본의 축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대중문화의 장에서 김완선의 내부투쟁을 등한시 한다는 것이다. 김완선의 생산자들이 대중문화의 장에서 특정한 위치공간을 갖는다. 특정한 위치공간은 또한 특정한 입장공간을 발생시킨다. 김완선은 기존의 가수들과는 조금 전략이 달랐다. 예쁜 외모에 고운 미성이 주류였던 당시에 김완선의 등장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김완선은 양희은, 송창식과 비교되기 보다는 당대의 전형적인 미녀, 미남 가수와 비교됐어야 한다. 김완선의 등장은 가요계의 법칙을 바꾸어 놓았다. 김완선의 생산자는 대중문화의 장 안에서 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이들에 대해 전복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한 장에서의 전복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장에서 구조적 동형성이 있는 이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대중을 상대로 하고,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대중문화의 장에서 이러한 일이 고급예술의 장, 패션의 장과 같은 방식으로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분명 김완선을 소비하는 대중, 김완선을 띄우는 문화의 가치에 대한 신념의 생산자는 이전과 다를 것이다. 장 내에서의 투쟁은 아비투스와 구조 또는 주관적 기대와 객관적 조응에 균열이 생길 때 더욱 치열해지고 전위적인 입장의 생산 또한 활발해진다.(Bourdieu, 1988) 이러한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저항적 열기가 타올랐던 시기의 가수들과 김완선을 비교한다면, 김완선의 특이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결말에 제시될 것이지만 김완선 현상은 국가가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저항을 가능하게 하는 특이성을 품고 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저항의 문제다. 저자는 김완선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 재생산 전략을 추구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알튀세르에서 이데올로기적 수준에서의 저항은 불가능하다. 이데올로기가 생산하는 재료는 이데올로기고, 산물 역시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의 수준에서는 결코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을 수가 없다. 그래서 과학적 인식의 영역으로 넘어가는데, 문제는 과학적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론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저자는 적극적인 문화전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같은 해에 쓴 「문화 운동의 새로운 전략」에서도 매체전술을 통한 장르확산을 논할 뿐이다. 단순히 기술발전에 발맞추어 새로운 매체를 통한 예술을 선보이는 것만으로 문화의 장에서의 투쟁이 가능할 것인가. 여전히 지배적인 문화는 대중가요이고, TV 연속극, 영화이다. 장르확산 이상의 새로운 전략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된다.

 문화의 장 내에서의 저항은 장의 규칙을 바꾸는 상징혁명을 이룰 때에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생산자가 장 내에서 혁신을 일으켜야 되고, 장 외부에서 경제성장, 교육받은 인구의 성장 등 외적인 변화, 다른 장에서의 특정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들과의 연대 등이 필요하다. 어떻게 혁신이 가능할 것인지를 묻지 않고, 단순히 정태춘이 배제를 당했기 때문에, 매체에 적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문화의 장에서 아무런 혁신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운동에서는 생산자, 환경 못지않게 소비자에 대한 고려가 중요한데, 이에 대한 분석이 전혀 빠져있다. 이는 국가이데올로기 장치에 의해 대중이 문화를 받아들인다고 하는 그의 가정에 기인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대중은 나름의 주체성을 가지고 선

택을 한다. 대중문화의 장은 고급예술, 명품패션 등과 다르게 장 내부의 투쟁에서 마지막 패를 쥐고 있는 변수는 다름 아닌 고객이며 소비자이다. 그러므로 소비자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없이는 어떠한 문화운동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저항시절에 인기 있었던 정태춘, 양희은, 김민기, 농촌에 기반을 둔 전통문화의 부활 등은 애초부터 대중보다는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이었다. 더 이상 대학생들이 엘리트의식을 갖고 고급문화를 향유하지 않는 오늘날 그 때와 같은 방식의 예술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4. 장기하 현상 - 저항의 재생산을 위하여


  전반적으로 저자의 논지에 동의하면서, 부르디외의 이론을 사용해 몇 가지 보완점을 찾아보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적극적인 문화운동의 변화와 사회변혁은 가능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계속 강조했듯이 저자의 논문은 20년 전에 쓰여졌다. 20년간의 세월의 변화를 고려해서 저자의 논지를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 지금은 그때 보다 자본주의의 성격이 좀 더 후기자본주의의 모습으로 변화하였고, 무엇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탄생하였다.

  과거의 대중매체는 생산자가 독점적이었다. TV, 라디오, 신문은 모두 몇몇 회사가 독과점하였다. 어마어마한 자본력과 기술력 없이는 대중매체 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과 컴퓨터 및 각종 기기의 발달로 환경이 급변했다. 이제는 개인이 손쉽게 컨텐츠를 생산하고, 저비용으로 이를 유통시킬 수가 있게 됐다. 각종 UCC, 짤방이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고 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1인 방송국을 꾸려, 수천만 네티즌을 상대로 방송을 할 수 있다. 여전히 주류 매체는 지배계급의 영향력이 강한 TV와 신문이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을 잘 이용한다면 저항세력도 충분히 자신의 문화생산물을 대중들에게 유통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젊은 세대의 저항가들을 재생산할 수 있다. 이제 문제는 컨텐츠이다.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컨텐츠는 무엇인가에 대한 천착이 중요하다.   물론 지금도 전형적으로 예쁘고 잘생긴 미남미녀들이 주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완선에서 그 싹이 보였듯이 후기자본주의의 대중은 다품종을 원한다. 이제는 못생겨도, 주류의 코드에 완전히 편입하지 않아도 인기가 있을 수 있다. 과거 같았으면 전혀 눈길도 받지 못했을 작은 눈이 쫙 찢어진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 양아치처럼 차려입은 ‘여자 가수’ 2ne1 등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대중은 규격화된 문화를 떠나서 조금 삐뚤어지고, 일탈한 문화생산물을 원한다.  

  이런 점에서 요즘 ‘장기하 현상’이 눈에 들어온다. ‘달이 차오른다’의 기괴한 몸짓, 거대한 선글라스에 시뻘건 입술화장을 한 전혀 미인이라고 봐줄 수 없는 두 명의 얼굴들. 싸구려 커피의 독특한 리듬. 노래를 하는 건지 그냥 방바닥에 앉아서 넋두리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창법, 소위 루저감성으로 표현되는 미래에 대한 희망도, 현재에 대한 낙관도 없이 근근히 살아가는 오늘날 20대의 모습을 담은 듯한 가사는 인터넷 공간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장교주 신드롬’까지 만들어냈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장기하는 후기 자본주의적 감성으로, 오늘날 툭하면 청년실업, 그나마 취직하면 비정규직, 한 푼도 안 쓰고 저축해도 내 집마련이 불가능한 세대의 감성을 건드리고 있다. 이것이 저항의 재생산으로 이어질지, 숙명적 체념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가 그 어떤 문화운동 세력도 건드리지 못했던, 요즘 세대들의 감성을 건드리고 있는 현상이다. 요즘세대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노골적으로 “너네 힘들지, 짱똘들고 싸워봐”라는 선동에 호응하지 않는다. 그러한 문예선동은 요즘세대들의 감수성에 충격과 공포만을 선사할 뿐이다. 요즘세대들의 감성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물들게 하는, 무의식으로 침투하는 감성의 계발 그것이 오늘날 필요하다. 그러한 감성을 매개로 이들을 어떻게 저항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겠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오늘날 문화운동의 과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감성은 예전 운동권과 같이 훈련시킨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방목하면서 잔뜩 풀어져, 밤새 술 마시고 다음날 일어나서 우울해져 방안에서 혼자 줄담배를 피다가 불시에 떠오르는 그것에 가깝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에서 그러하다. 그렇기에 예전과 달리 문화운동에는 우연성이 많이 개입할 것이다. 고무적이게도 장기하는 MBC 노조파업을 비롯해 각종 저항운동에 결합해 주고 있다. 오늘날 가능한 문화운동은 20대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예술가의 발굴, 육성 그들과의 연대 이다. 충격과 공포만 선사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리얼리즘은 이제 검은 비닐에 고이 담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자. 오늘날 문화운동은 장기하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현대 철학의 흐름, 동녘

김완선, 자본주의, 사회변혁, 강내희

문화운동의 새로운 전략, 강내희

문화생산과 지배, 이상길

문화, 상징질서, 일상의 삶, 도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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